(21시간)
안녕하세요. 키르키즈스탄 목장 이동진 입니다.
저는 특별히 주일에 받은 말씀에 감사하여 그것을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이번 주일 말씀은 “다비다” 였습니다.
말씀 초반부에 아름다운 이름을 가졌다면 그 이름에 합당한,
책임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저희 가정에는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딸 아이가 하나 있습니다.
저희 가정에 하나님께서 허락해주신 가장 큰 감사거리이기도 합니다.
그 아이의 이름은 “다비” 입니다.
그게 다비다와 무슨 상관인지 의아 하실 수도 있겠지만
제 나름 사도행전 9장 말씀을 묵상하던 중에 짓게 된 이름 입니다.
다비다가 선행과 구제하는 일에 힘쓰고 궁극적으로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사건을 통해 주의 복음이 증거되고 전파되는데 사용되었던 것과 같이
나의 자녀도 어떠한 모양으로든 다바다와 같은 삶을 살아 가기를 바라며
한문도 많을 多자에 도울 裨자로 지었습니다.
성경 그대로 다비다로 짓고 싶었지만 철저히 믿지 않으시는
양가부모님들을 의식되어 그러지 못한 것은 지금도 아쉽습니다.
말씀을 들으며 제 자신의 모습을 말씀에 비추어 보았습니다.
선행과 구제를 많이 하라고, 많이 도와서 주님의 사랑을 전하라며
자녀의 이름을 그렇게 지어놓고 부모의 삶이 그러하지 못 함을 보았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이제 갓 한돌이 지난 다비가 “아빠는 그렇게 안 살면서
왜 나만 그렇게 살라고 이런 이름을 지으셨어요?” 라고 당장이라도 유창하게
물어볼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물어 온다면 할 말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목사님께서는 다비다의 사랑의 원천은 그녀가 믿었던 주님의 사랑이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비다는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자기 전체를 희생하셨음을 알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거룩하게 낭비할 수 있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근래에 저의 모습 가운데서 사랑이 없음을 자주 보게 되었고,
주일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닮아가기엔
아직도 턱없이 부족한 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없이 행하는 선행과 구제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이러한 나의 모습을 보고 깨닫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이제는 다비의 이름을 부를 때 마다 주님의 그 희생의 사랑으로
선행과 구제에 힘써야 한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될 것 같습니다.
저희 가족이 다비 이름의 뜻대로 주님의 사랑 안에서 선행과 구제에 힘쓰며 살아간다면
그것이 바로 참된 제자의 길이요, 많은 사람이 주를 믿게 되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말씀을 잊고 말씀과 반대된 삶을 살고 있던 저에게 주일 말씀을 통해 채찍질 하시고
바른 길을 가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제 이름의 한자 뜻은 동녁 東자에 베풀 陳자 입니다.
동쪽에서 베풀어라.. 억지로 갖다 붙이면 말이 되기도 하겠지만..
정말 아무 의미 없습니다.
아버지께 무슨 의미로 지으신 거냐 물으니 그냥 옥편보고 지으셨다며
원래는 진칠 陣자로 했었어야 하는데 동사무소 직원이 잘 못 쓴 거랍니다.
동쪽에 진을 쳐라.. 더 가관입니다.
아무래도 옥편에 있는 아무 한자나 갖다 붙여 지으신 듯 합니다.
그래서 저는 어려서부터 이름에 의미가 없음을 한탄해 왔습니다.
저도 이름대로 살아보고 싶은데 말이죠. (동진의 뜻대로 살려면 아메리카 대륙으로 가야 할까요?)
하지만 이제는 이름의 의미 없음을 한탄하지 않겠습니다.
말씀 기초한 우리 딸 아이의 이름, 그 이름의 의미대로 살겠습니다.
그러한 삶이 주님께서 원하시며 기뻐하시는 삶이라 믿습니다.
말씀을 통해 이러한 깨달음과 도전을 주신 주님께 다시 한번 감사 드립니다.
길고 지루한 내용 인내심을 가지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감사릴레이 주자는 키르키즈스탄 정헌하 자매님을 지목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