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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는 과연 잘 살고 있는가?
작성자
교회지기
Date : 2019.08.17 10:37, View : 784
지난 4월에 일본 왕이 바뀌어 새 연호를 제정했다는 소식으로 온 일본이 떠들썩했습니다. 뉴스에 나오는 일본 사람들은 감격하고 기뻐하는데, 저는 아무런 흥분도 느껴지지 않는 것이 오히려 너무나 이상하게 느껴졌습니다. 그 때, 이렇게 중요하고 감격스러운 일이 하늘에 있는 허다한 증인들이 보기에는 하품 나는 일일 수 있겠구나, 사도 바울이 세상에서 유익하던 것을 배설물처럼 버릴 때 이런 느낌이었겠구나 깨달아졌습니다.
톨스토이는 1886년 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썼습니다. 주인공 이반 일리치는 서민층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판사의 자리에 오르며 인생 역전의 삶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가정생활은 불행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새 집에 커튼을 걸다가 떨어져 심각한 부상을 입고 겨우 45세 나이에 죽음을 맞이합니다. 처음에는 자신에게 그런 불행이 닥친 것에 분노하였지만 곧 ‘내가 제대로 살지 못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임종의 순간 자신을 환한 빛 속으로 밀어내는 영적 체험을 하게 되는데, 가족을 향한 미움이 연민으로 바뀌며 환한 얼굴로 숨을 거둡니다.
이 소설은 50대 중반이 되었던 톨스토이 자신의 이야기였습니다. 작가로서 크게 성공하였지만 필연적인 죽음에 관해 고민하는 중 성공과 재산과 명예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인생의 답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도 지금 임종을 맞이한다면 “내가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겠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과연 잘 살고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죽음의 순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세상에서 어떤 업적을 이루었는지, 돈은 얼마나 모았는지, 얼마나 유명한 사람이 되었는지를 묻지 않으실 것입니다.
오직 매 순간 주님과 동행하였는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심은 것은 무엇인지, 주님과 함께 받은 고난의 흔적이 있는지, 오직 사랑만 하며 살았는지를 물으실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항상 명심하고 있지 않다면 지금 땅을 치고 후회할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모든 것이 혼란스럽지만 가장 심각한 것은 무엇이 잘 사는 것인지에 대한 기준이 왜곡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온통 편안한 삶, 성공한 삶, 건강한 삶, 풍요한 삶, 유명해지는 것으로 성공과 실패를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정신 차려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살고 있는지 매순간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이 주는 생각에 사로 잡혀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어느 순간 주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 가지고 있는 생각이 주님 앞에 설 때 자신의 생각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아무 생각이나 품어서는 안됩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맡기신 일을 완성하여, 땅에서 아버지께 영광을 돌렸습니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요17:4). 우리의 유일한 관심은 ‘지금 나는 하나님께서 하라 하시는 일을 하고 있는가?’ 여야 합니다. 그것만이 남는 것이며, 그렇게 살지 못한 것이 가장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선한목자교회 유기성목사)
톨스토이는 1886년 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썼습니다. 주인공 이반 일리치는 서민층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판사의 자리에 오르며 인생 역전의 삶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가정생활은 불행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새 집에 커튼을 걸다가 떨어져 심각한 부상을 입고 겨우 45세 나이에 죽음을 맞이합니다. 처음에는 자신에게 그런 불행이 닥친 것에 분노하였지만 곧 ‘내가 제대로 살지 못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임종의 순간 자신을 환한 빛 속으로 밀어내는 영적 체험을 하게 되는데, 가족을 향한 미움이 연민으로 바뀌며 환한 얼굴로 숨을 거둡니다.
이 소설은 50대 중반이 되었던 톨스토이 자신의 이야기였습니다. 작가로서 크게 성공하였지만 필연적인 죽음에 관해 고민하는 중 성공과 재산과 명예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인생의 답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도 지금 임종을 맞이한다면 “내가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겠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과연 잘 살고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죽음의 순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세상에서 어떤 업적을 이루었는지, 돈은 얼마나 모았는지, 얼마나 유명한 사람이 되었는지를 묻지 않으실 것입니다.
오직 매 순간 주님과 동행하였는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심은 것은 무엇인지, 주님과 함께 받은 고난의 흔적이 있는지, 오직 사랑만 하며 살았는지를 물으실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항상 명심하고 있지 않다면 지금 땅을 치고 후회할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모든 것이 혼란스럽지만 가장 심각한 것은 무엇이 잘 사는 것인지에 대한 기준이 왜곡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온통 편안한 삶, 성공한 삶, 건강한 삶, 풍요한 삶, 유명해지는 것으로 성공과 실패를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정신 차려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살고 있는지 매순간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이 주는 생각에 사로 잡혀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어느 순간 주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 가지고 있는 생각이 주님 앞에 설 때 자신의 생각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아무 생각이나 품어서는 안됩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맡기신 일을 완성하여, 땅에서 아버지께 영광을 돌렸습니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요17:4). 우리의 유일한 관심은 ‘지금 나는 하나님께서 하라 하시는 일을 하고 있는가?’ 여야 합니다. 그것만이 남는 것이며, 그렇게 살지 못한 것이 가장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선한목자교회 유기성목사)